12·12 당시 교전 과정에서 사망한 고위급은 한 명도 없다. 사망자는 세 명. 특전사령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당시 35살)이 그나마 가장 고위급이었다. 국방부 헌병대 정선엽 병장, 수도경비사 33헌병대 박윤관 일병은 20대 사병이었다. 사진 속 무리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였다. 영문도 모른 채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5m 거리를 두고 누워 있다. 유족은 1995년 12월12일 그곳에서 만나 처음 손을 맞잡았다. 정 병장의 사인은 당시 ‘오인 사격’으로 조작됐다가 2022년에야 진상이 규명됐다. 43년 만이었다.
12·3 내란사태에서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교전 자체가 없었다. 교전이 없었던 건 윤석열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였기 때문이다.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점령 대상 기관은 비무장이니, 화기끼리 충돌할 가능성은 애초 없었다. 그럼에도 군 전체의 일반의지를 무시한 소수 엘리트의 패권 의지가 관철됐다는 점에서 12·12 반란과 다르지 않다. 45년 만에 재림한 하나회가 곧 충암파인 셈이다.
충암파가 하나회보다 훨씬 소수인 건 사실이지만, 친위 쿠데타에 핵심적인 라인업은 제대로 갖췄다. 윤석열대통령_김용현 국방부 장관-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박종선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777사령관의 충암파 라인에 경찰청을 관할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합치면, 12·12 반란 당시 전두환에 견줘 모양새가 크게 빠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국방부 장관이 한배를 탔고, 윤석열 자신이 대통령이어서 재가를 받아야 할 상전이 없는 것은 전두환보다 외려 유리했다. 사실 전두환의 보직은 지금의 여인형 사령관과 같았다. 외려 직급(소장)은 낮았고 나이(48살)도 어렸다.
12·3 내란 실패의 원인을 군사적으로 한정해서 보면, 무력이 아니라 심리였다. 내란에 연루된 비충암파들은 비상계엄의 당위성, 필요성, 합헌·합법성 어느 것 하나도 공감하거나 확신하지 못했고, 이런 면모는 무력이 집중된 국회의 현장 지휘관들의 혼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내란 가담자 가운데 최초로 내부고발과 대국민 사과의 모양새를 취한 특전사령관 곽종근의 양면적 모습은 상징적이다. 생방송에서 주장한 것과 달리, 그는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이틀 전부터 알았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위헌·위법한 명령을 즉시 거부하지 못한 지휘관들은 곽종근처럼 회색지대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12·12 군사반란에 뛰어든 하나회 신군부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를까. 군 문화에 관해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유보적이었다. 우리 군은 여전히 문화 지체 상태라는 진단이다. 최 교수는 “비상계엄 자체가 너무나 뜬금없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면서도 “‘국민의 군대’라는 기본정신이 우리 군에 얼마간 내면화된 것이 사태 악화를 막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제정된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5조(국군의 강령)에는 ‘국민의 군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명문화돼 있다. 또한 이 법 제24조(명령 발령자의 의무)는 법규에 반하는 명령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명령 복종의 의무(제25조)는 있어도 명령을 거부할 권리와 사유 등은 없다. 최 교수는 “미국 육군은 충성의 대상을 ①헌법 ②육군 ③부대 ④동료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우리 군이 반사적으로 생각하는 ‘직속상관’은 없다”며 “상관의 위헌·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와 국가의 보호 의무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을 사병으로 군에 보낸 부모들은 12·3 내란 때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강원도 접경지에서 복무 중인 군인들에게 유서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주장이 어느 부모로부터 제기되기도 했다. 시민들은 집회 현장에서 나라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려는 청년들이 시민과 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에 분개했다. 독일 연방방위부의 ‘국방정책 가이드라인’에 담긴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개념은 시민으로서 군인의 정체성과 권리, 책임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군인은 범죄적 명령 등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쿠데타의 재발을 막는, 낡은 사진을 영원히 묻기 위한 첫 단추는 군인의 시민적 권리 강화다.
한겨례21,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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